[데스크 칼럼] 그 많던 홍콩영화는 다 어디 갔나

입력 2022-06-29 17:26   수정 2022-06-30 00:16

33년 전 이맘때로 기억한다. 짝사랑했던 미국 여가수 티파니가 한국에 온다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 시험 기간이란 점도, 공연장이 저 멀리 안양공설운동장이란 점도, 티켓을 사려면 몇 달 치 용돈을 털어야 한다는 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티파니를 ‘직관(직접 관람)’할 수 있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고등학교에 다녔던 기자가 속한 무리에서 한국 음악을 듣는 친구들은 ‘촌놈’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 더 팝송을 찾았던 것 같다.

영화는 할리우드 아니면 홍콩이었다. ‘영웅본색’ ‘천장지구’ 등 홍콩 영화의 인기는 ‘탑건’이나 ‘터미네이터2’에 못지않았다. 장국영이나 주윤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드래곤볼’ ‘북두신권’ 등 일본 만화도 마찬가지였다.
K콘텐츠의 숨은 주역은 기업
그 당시 한국 대중문화의 주인공은 한국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홍콩처럼 스토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도 없었고, 미국처럼 리드미컬한 멜로디를 만들어낼 실력도 없었다. 조용필 임권택 허영만 등 실력자는 그때도 있었지만, 이런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줄 곳이 없었다.

그런데 30년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그 많던 홍콩 영화는 다 사라졌고, 빈자리는 한국 영화가 채웠다. 전 세계가 방탄소년단(BTS)과 소통하기 위해 한국말을 배우고, 네이버웹툰은 ‘만화왕국’ 일본을 폭격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천재 아티스트’들이 지난 30년 동안 집중적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정부가 만사 다 제치고 문화산업만 육성한 것도 아닌데…. 힌트는 얼마 전 끝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감독상(‘헤어질 결심’의 박찬욱)과 남우주연상(‘브로커’의 송강호) 작품을 모두 CJ가 투자·배급한 것.

CJ가 영화에 뛰어든 건 ‘홍콩 영화 전성시대’였던 1995년이었다.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미래에 2조원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흩어져 있던 ‘영화 천재’들이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CJ가 송강호와 봉준호란 구슬을 꿰자 ‘기생충’이란 보배가 나왔고, 박찬욱과 탕웨이를 엮자 ‘헤어질 결심’이 됐다.

K팝 신화를 만든 것도 기업이었다. CJ가 영화에 뛰어든 1995년에 이수만 회장은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팝송에 맞서 가요시장을 지키기도 버거웠던 그 시절, 이 회장은 해외에서도 통할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성과 낸 만큼 지원해줘야
한국 대중문화가 보잘것없었던 그때, 이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지금 전 세계가 BTS 음악을 듣고 봉준호 영화를 볼 수 있었을까. 기적처럼 찾아온 K콘텐츠의 인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한순간에 사라진 홍콩 영화처럼 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누구라도 ‘K콘텐츠에 힘을 보태주자’고 할 것 같은데, 정부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고용 창출 효과 등이 큰 콘텐츠 제작 특성을 감안해 3~10%에 불과한 제작비 세액 공제율을 미국(25~35%) 수준으로 높여달라”는 업계 요청을 몇 년째 외면하는 게 대표적이다. 대기업도 혜택을 받는다는 게 정부가 머뭇거리는 이유일 터다. 미국 정부는 CJ ENM(작년 매출 3조5000억원)보다 10배 넘게 큰 넷플릭스(38조원)에 전폭적인 세제 지원을 해주는데도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칸 영화제 수상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게 새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라고 했다. ‘문화 도우미’를 자처한 윤석열 정부에서 대중문화계의 숙원이 가능한 한 많이 풀리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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